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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후기

[Hollow Knight] 지금 막힌 길이 미래도 막진 않으니

가을고양이 2025. 9. 27. 03:17

유행을 1편 정도 늦게 타는 편

재밌었고 다음에도 봅시다.

 

이제와서 갑자기 웬 할로우 나이트? 싶겠지만, 당연히 이번달 나온 실크송 떄문이다.

인디게임들이 실크송을 피해 발매를 연기할 정도로 파급력이 큰데, 1편도 안 해보고 2편을 할 순 없지 않겠나?

 

사실, 할로우 나이트를 산 건 꽤 옛날이다. 스팀에 가보니 2020년 12월 28일에 구매했는데, 이제서야 엔딩을 본 것.

그렇다면, 사놓고 시간이 없어서 안 했나? 하면 그건 또 아닌게, 그냥 순수하게 재미가 없었다. 오리와 눈먼 숲도, 할로우 나이트도 첫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종료했는데, 이때문에 "메트로배니아는 나랑 안 맞나 보다."는 생각도 했었다.

 

심지어 얘는 산 직후에도, 작년에도 시도해봤지만 못 참고 꺼버렸다.

 

이번에 각잡고 한 이유는 실크송도 실크송이지만, 안 맞는 게임을 해보고 분석해 개발 중인 게임에 적용하려는 게 더 컸다.

이번 기획에 '탐험' 요소가 들어가다보니, "재밌는 탐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도 공부할 겸 명작 메트로배니아 장르로 불리는 할로우 나이트를 켠왕 비슷하게 했다.

 

그렇다. 이 글은 게임 후기이자, 분석글이다.

 

※ Hollow Knight에 대한 강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관심이 있거나 플레이할 예정인 분들은 뒤로가기를 누르십시오. 여러분의 기회는 소중합니다.


 

니가 늠름한 척해서 뭐 할 건데. Steam 페이지에서 발췌.

점수

92 / 100

 

해당 기준은 100% 주관적이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70~: 평작, 80~: 수작, 90~: 명작)

 

한줄평

빈틈없는 설계가 제공하는 아름다운 자유


Hollow Knight. 뭐 하는 게임인가?

할로우 나이트는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게임으로, 일종의 소울라이크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럼 메트로배니아는 무슨 장르인가? 비선형적 동선을 기반으로, 맵의 군데군데가 막혀 있고, 새로운 능력을 얻으면 이전에 막혔던 길을 지나갈 수 있는 구조의 탐험 게임이다.

 

쉽게 말해 오픈월드처럼 가고 싶은 곳부터 돌아다니며 맵을 전부 탐험하는데, 대놓고 가지 말라고 막힌 곳은 나중에 성장해서 지나가는 게임이다.

 

"넌 못 지나간다." 가까이 가면 숨어서 때릴 수 없는 몹이 가로막고 있다.

 

특히 할로우 나이트는 맵이 방대하고 넓기로 유명한데, 억지로 늘린 게 아닌 "더 넣고 싶었는데 못 넣었어요."라고 말하는 듯, 콘텐츠로 가득하다는 게 장점이다. 이때문에 플레이 시간이 20시간이 넘는데도, 유저는 흥미로운 세계를 지루함 없이 탐험하게 된다.

 

왼쪽처럼 넓고 촘촘한 길이 오른쪽처럼 넓게 퍼져 있다.

 

게임에서 가장 많이 느낀 인상은 특이하게도, "야숨과 비슷하네"였다. 둘은 차원부터 전투,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른 점 투성이지만, 드넓은 맵을,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채워 끊임없이 모험의 재미를 선사하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느꼈다. 또한, 이는 내 입장에선 극찬과도 가까운 문장이다.

 

이는 할로우 나이트 역시, 야숨과 동일하게 탐험하는 재미를 메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안 가본 장소에 흥미가 생기고, 지도를 전부 밝히고 싶은 감각. 인상 깊은 곳엔 마커를 남기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야숨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야숨은 원한다면 언제든, 힘들더라도 갈 수 있지만, 할로우 나이트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할로우 나이트는 대놓고 너 아직 여기 못 가!를 시전하고, 우린 돌아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건 단점일까? 아니다. 이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하는데, 바로 발견의 기쁨증폭된다는 점이다. 

 

산성 호수로 채워 대놓고 가지 말라고 만든 길. 하지만 그렇기에, 산성을 무시하는 "이스마의 눈물"을 얻었을 때 이곳부터 생각이 났다.

 

가고 싶은데 갈 수 없는 길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순간,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빨간 옷이 실크송이죠?

 

또한, 이는 전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할로우 나이트의 전투는 소울스럽다는 평과 달리, 난이도가 많이 높진 않다. 정말 어려운 보스들도 꾸준히 트라이하면, 10번이 넘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개인 편차는 좀 있겠지만.)

 

가지 못한 길을 가는 방법은 대쉬, 2단 점프, 원거리 공격 등 플레이어의 성장과 직결된다. 이동의 편의성이 증대되면, 당연히 보스전의 난이도 역시 낮아진다. 뿐만 아니라, 맵을 돌아다니며 발견하는 부적은 아예 직접적으로 전투와 기타 편의성을 증가시켜준다. 지오를 자동으로 모아주는 자석부터, 공격력이 올라가거나 목숨을 늘려주는 부적, 피격 시 반격하거나 무적 시간을 늘려주는 부적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만약 전투가 정말 어렵고 고통스럽다면, 탐험을 조금 더 진행해 부적과 능력을 모아 다시 도전하는 것또한 하나의 방법이 된다. 이 게임은 친절하게도, 보스방 근처에는 항상 의자를 두어 세팅 변경을 용이하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할로우 나이트는 막힌 길은 체크해두고, 다른 곳을 탐험하며 예전에 본 길을 열고 보스를 잡아나가는 게임 되시겠다.


이 작은 벌레들에서 소울향이 느껴지는 이유

먼저, 나는 아직 다크 소울3조차 클리어하지 못 했다. 무려 2018년에 사놓고, 아직도 깨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인 2024년 소울 붐이 일었고, 내가 보던 유튜브(주로 게임 분석 채널)가 온통 다크 소울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얕은 지식만으로 평한다는 점은 양해 바란다.

 

왜 전투가 소울같은가?를 논하려면, 먼저 소울의 전투란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한다. 이는 자원의 한정, 높은 난이도 등 다양한 요소가 있겠으나, 여기선 정직한 패턴과 회피 후 공격이 있겠다.

 

기존 내가 해왔던 액션 RPG 게임들(마비노기 영웅전, 로스트아크, 메이플스토리)은 일단 때려가 베이스다. 내가 가진 딜사이클로 먼저 전투를 개시하고, 중간중간 보스가 공격하면 잠깐 피했다가 다시 공격을 이어나간다.

 

한술 더 떠서, 아예 콤보와 넉백으로 잡몹들은 반항도 못하게 한다. 마영전의 홀딩, 메이플의 바인드는 보스를 못 움직이게 막아놓고 때리기기도 한다. 여기에 화려한 이펙트까지 얹으면, 시원시원한 공격과 내가 적을 압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메이플스토리는 '바인드'로 적을 묶어놓고, 극딜 후엔 생존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울의, 할로우 나이트의 전투는 다르다. 이들의 전투는 시원시원하고 다양한 스킬도, 엄청난 콤보도 없다. 가진 거라곤 기본 공격 하나뿐. 열심히 구르고 피해서 만들어진 빈틈에, 한 대씩 툭툭 치면서 데미지를 누적시켜 잡는 전투를 한다.

 

그렇기에 여기선 섣불리 공격할 수 없다. 먼저 상대의 패턴을 관찰하고, 피하고, 패턴 후 찾아오는 짧은 빈틈에 한 대씩 찔러넣어야 한다. 보스뿐 아니라, 잡몹들도 패턴을 모르면 HP가 까이기 일쑤다.

 

특히 이놈은 먼저 치는 순간 맞는 건 확정이다.

 

이처럼 소울과 할로우 나이트의 전투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적이 공격을 하지 않으면 가까이 다가가 공격하기를 기다린 후 때리게 된다. 보스에서, 잡몹에서, 이런 조심스런 전투를 진행하는 게, 스태미나가 없음에도 소울스러움을 주는 이유같다.

 

특히 이놈은 진짜 열받으며 깼다. 1:1이 어려운 게임에, 자꾸 잡몹을 소환하니까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더라.


재밌는 탐험을 만드는 방법

하지만, 할로우 나이트의 근간은 전투보단 탐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할로우 나이트의 탐험은 다른 게임들과 달리 재밌다는 느낌이 들까?

 

1. 배신하지 않는다.

할로우 나이트는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를 배신하지 않는다.

 

대놓고 "여기로 가!"라고 광고하는 수준

 

할로우 나이트는 탐험 게임인 만큼, 유저의 목표는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위 사진처럼 표지판까지 달린, 아래로 향하는 길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면 어떨까? 내려갔더니 바닥이 가시여서, 내려가면서 왼쪽 키를 눌러야 하는 맵이라면?

 

할로우 나이트는 그런 짓을 하지 않으니 안심하라구!

 

할로우 나이트엔 그러한 함정이 없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플레이어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고통만을 위한 함정은 없다.

이는 하나의 보증이 된다. "어디든 새로운 곳을 갈 때, 대처하지 못하는 죽음은 주지 않을게. 그러니 안심하고 탐험해 봐!"

 

그래서 유저는 미지의 장소에 가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가끔 길이 막히고, 몬스터가 등장해 당황할 순 있어도, 결코 불합리하게 일단 죽고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이동에 두려움이 없으니 더 적극적으로 맵을 밝히러 돌아다닐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발견의 기쁨만이 남는다.

 


2. 내가 공격 키를 연타하며 이동하는 이유

할로우 나이트는 디테일이 엄청난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상호 작용 가능한 배경이다.

 

배경처럼 보이는 기둥과 풀마저도...
공격하면 무너지고 잎이 날린다!

 

할로우 나이트의 배경은, 대부분 공격을 받으면 그에 맞춰 파괴된다. 잎은 흩날리고, 버섯은 터지며, 기둥은 부서진다. 별 것 아닌 이 상호작용이, 세계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이동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할로우 나이트는, 기본적으로 순간이동이 매우 제한적이다. 사슴벌레 정거장이 있긴 하지만 맵과 맵 사이 이동 정도고, 대부분의 시간은 왔던 길을 다시 가는 데 사용한다.

 

아무리 탐험이 재밌고 속도가 빠르다 한들, 이미 했던 일을 또 하는 건 매우 지루한 일이다. 그러나, 배경을 부수며 이동한다는 이 사소한 장난이, 자칫 게임을 끄게 만들 지루함을 없애버린다.

 

엘리베이터 속도가 느리다는 민원의 해결법이 "내부에 거울을 설치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속도가 얼마나 느리냐보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일을 하는 동안 얼마나 지루한가다. 그런 점에서 할로우 나이트는, 탐험의 지루함을 잘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3. 여기 뭔가 수상하지 않아?

탐험하는 유저에게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내가 어디를 안 갔는지 모르겠는 상황이 아닐까?

 

할로우 나이트는 이러한 스트레스가 비교적 덜 한 게임이다. 그 이유는 바로 정직한 지도와 마커의 존재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사운드와 물체의 상호작용 또한 이 스트레스를 덜어준다.

 

대놓고 선이 끊겨 있는데?

 

할로우 나이트는 언제 어디서든 지도를 볼 수 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지도를 펴면, 항상 대놓고 여기 안 갔어라고 외치는 공간들이 있다. 따라서 "어디를 갈까?"라고 고민하는 일은 생각보다 적었다.

 

반짝반짝 마커들... 내 지오...

 

또한, 일전에 수상하게 여겼지만 지나가지 못한 곳은 마커를 표시할 수 있다. 색깔도 4가지나 제공해주기에, 내가 거길 못 간 이유가 능력이 없어서인지, 아이템이 없어서인지, 보스를 못 잡아서 인지에 따라 다르게 저장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능력을 얻은 후, 어디서 막혔었는지 빠르게 알아내는데도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산성액에 빠져도 보호되는 이스마의 눈물을 얻었을 때, 나는 버섯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해당 맵의 마커를 보고 단번에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맵마다 확실하게 달라지는 컨셉 역시 이러한 과정에 도움을 준다.

 

그럼, 막힌 건 아닌데 숨어 있어서 못 찾은 경우는 어떻게 될까?

 

너 여기서 뭐하니?

 

이는 크게 2가지, 소리와 상호작용으로 유저에게 힌트를 준다.

 

게임을 켜고 얼마 안 있어 만나게 되는 애벌레가 대표적인 예신데, 이놈들은 근처에 있으면 귀여운 소리를 낸다. 그럼 맵을 이동하다가도, "여기 어딘가 애벌레가 숨어 있어!"라며 온갖 벽을 부셔보게 된다. 애벌레를 비롯해, 지도 제작자 코니퍼나 각종 NPC들은 자신만의 사운드를 갖고 있다. 이는 가까이 갈수록 커지기에, 플레이어는 NPC가 숨어 있어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코니퍼는 지도를 판매하는데, 중요한 역할이라 그런지 가는 길까지 종이를 뿌려 표시해준다.

 

혹은 지오를 잔뜩 주는 광맥을 두고, 그 뒤 벽을 맞을 때마다 크게 흔들리는 식으로 힌트를 주기도 한다. 유저들이 지오를 노리고 돌을 치면, 자연스레 그 뒤의 벽도 맞게 되고, 대놓고 특이한 사운드와 흔들림으로 여기 길이 있고, 때리면 열릴 거야라고 알려준다.

 

그래서 할로우 나이트는 탐험의 재미는 잘 전달하면서, 탐험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최소화 한 성공적인 예시다.

 


4. 가장 중요한 건, 가보고 싶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아무리 넓은 맵을 촘촘하게 잘 만들었다 한들, 가보고 싶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게임은 영화와 달리,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해야 한다. 즉, 플레이어가 하고 싶지 않으면 엔딩은 볼 수 없다.

 

할로우 나이트는 그럼 어떻게 사람들에게 탐험 동기를 심어줬을까? 다른 탐험 게임과 차별되는 점이자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특징. 바로 발견의 기쁨이 극대화된다는 것이 그 방법이다.

 

새로운 장난감을 얻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고 싶어하는 건 뭘까? 바로 그 장난감을 써보는 것이다.

 

파이어!!!!!!!!!!!!!!!!

 

할로우 나이트에서 새 능력을 얻으면, 100% 근처에서 해당 능력을 시험해볼 수 있다. 위 사진은 일직선으로 무한히 날아가는 수정 심장을 얻는 곳인데, 열심히 점프해가며 왔던 길을 스킬 하나로 돌아갈 수 있다. 새로운 물건을 얻었을 때, 즉시 써보며 재미를 느끼고, 이후 이전에 봐뒀던, 혹은 새로운 길에서 능력을 써서 또다른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또한, 할로우 나이트의 맵 설계가 치밀한 점이, 능력이 없을 땐 그냥 지나왔던 길인데, 얻은 후 살펴보면 새로운 능력도 쓸 수 있게 설계가 되어 있다.

 

아니 뭔 저만큼을 걸어 가래;

 

예를 들어, 이 안식의 땅은 가로 길이가 긴 맵이다.

 

밟고 올라가라고 둔 건가?

 

맵을 전부 걸어가면 밟고 올라가는 블록들이, 위로 길게 뻗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엔 사슴벌레 정거장이 있다.

 

이렇게 가로로 긴 맵을, 수정 심장을 얻은 사람이 본다면, 당연히 써보고 싶지 않겠는가?

 

파이어!!!!!!!... 어?

 

그런데 수정 심장을 이용해 이동해보면, 처음엔 그저 발판인 것 같던 블럭이 알맞게 멈추는 장소가 된다.

 

사실 여기서도 한번 멈춘다.

 

그리고, 중요한 물체에서도 한번 멈추게 만들어, 수정 심장을 얻은 후 이곳을 발견한 플레이어들도 결코 중요한 걸 놓치게 두지 않는다. 이렇게 할로우 나이트는 능력이 있어도, 없어도 맵은 그 자체로 할 일을 다하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잘 설계된 맵이다.

 

모든 발판을 밟아가며 힘들게 오르던 곳이 더블 점프를 얻자 단숨에 올라가지고, 몬스터를 때려가며 겨우 가던 길은 슈퍼 대시 한 번에 스킵이 된다. 얻은 직후를 넘어, 막힌 길을 뚫는 걸 넘어, 무심코 지나쳤던 길에도 능력을 써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능력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며, 플레이어들이 맵이 막힐 때마다 빨리 새로운 능력을 찾고 싶다는 욕망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할로우 나이트가 그 넓은 맵을 전부 탐험하고 싶게 만드는 방법이다.


나는 왜 할로우 나이트가 재미 없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왜 재밌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로우 나이트가 재미 없었다. 오리와 마찬가지로, 첫 맵에서 게임을 꺼버렸다.

기획자의 관점에서, 할로우 나이트는 메트로배니아의 재미를 초장부터 제공한다. 이른 시간에 우린 원거리 공격을 배우고, 또 그 공격을 이용해 뭔지 모르던 길을 연다. 그러면 새로운 맵으로 이어지고, 지도를 찾으려, 맵을 밝히려 게임을 계속하게 된다.

 

그런데, 우린 그 전에 본질적인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 우린 왜 이 게임을 해야 하는가?

 

과거, 집에 간신히 게임기를 들이고, 몇 개 없는 게임을 돌려하던 시절엔 재미가 없어도 끝까지 깨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요즘엔, 게임 외에도 재밌는 게 너무나 많다. 우린 재미를 느낄 때까지 기다려줄 필요가 없다.

 

할로우 나이트는 당대의 다른 게임과 비교해도, 확실히 빠른 시간에 핵심 재미를 전달한다. 그런데, 그걸 다 떠나서, 그래서 내가 왜 여길 탐험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은 이제 그 효능을 다했다. 야숨이라면,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유저의 흥미를 끈다. 산나비는, 하다못해 "산나비에게 복수한다."는 동기를 제공한다. 지루하기로 유명한 쯔꾸르 게임들도, 최소한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제공해준다.

 

그런데, 할로우 나이트는 그런 게 없다. 아마 당신이 엔딩을 보기 직전까지도, 당신은 왜 탐험을 하고 있는진 모를 것이다.

 

그렇구나.... 근데 뭐? 갑자기 얘네를 왜 찾으러 가?

 

할로우 나이트가 제공하는 동기는, 오로지 탐험이 재밌다가 전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게 먹히는 사람들은 탐험이 재밌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이전까지의 나는 그런 게 없었다. 그냥 "할로우 나이트가 잘 만든 게임이니까"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30분쯤 지났을까. 난 바로 게임을 꺼버렸다. 내가 왜 맵을 헤메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할로우 나이트를 하기 전, "이 게임이 메트로배니아 계의 명작이고, 메트로배니아 장르는 탐험을 주로 하며, 막힌 길을 추후 얻는 아이템으로 뚫는 재미를 가진" 게임이라는 정보를 갖고 있었다.

 

탐험이 재밌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할로우 나이트를 재밌게 할 수 있다. 비슷한 장르를 이미 해봤거나, 다른 게임들에서 비슷한 2D 탐험을 경험해본 적 있는 사람들은 말이다. 그렇지만,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이 게임을 한다고해서, 탐험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내 경험에 비추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게 내가 할로우 나이트를 명작으로 평가하면서도, 90점 위로는 주지 못한 이유다. 이 게임은 게임 자체로 완벽하지 않다. 장르에 대한 사전 지식, 게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첫 맵인 잊혀진 교차로조차 탈출하기 힘들다.


 

이는 오히려, 라이브 게임이 더 강력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이번 달에 시작한 컴투스프로야구v25를 예로 들어보자.

 

올해 들어 롯데 전민재의 응원가에 이끌려 야구를 보기 시작했고, 최근엔 지인의 권유로 게임도 시작했다. 이 게임은 복잡한 튜토리얼, 악독한 BM, 메이플보다 복잡한 강화 시스템 등 단점도 많지만, 동기만큼은 누구보다 강렬하다. 좋아하는 선수들을 키워 나만의 팀을 만들자. 그걸 위해 선수의 시즌을 알아보고, 육성법을 알아보고, 재화 획득법을 알아보고, 이벤트랑 현질뿐인 걸 보고 컴투스 좀 욕하고 캐릭터를 육성한다. 게임을 처음 설치하는 순간부터 5분 내에, 게임을 이어갈 강력한 동기를 제공한다.

 

라이브 게임들은 특히 신규 유저 유치를 위해, 목표 제공에 온힘을 쏟는다. 렌과 260 버닝, 아이템 버닝으로 하드스우까지 끌어올린 메이플도 그렇다. 그런데, 내가 콘솔 게임을 더 선호함에도, 콘솔 게임이 외려 라이브 게임보다 이 부분이 약한 것 같다.

 

결국, 게임은 하고 싶어야 한다. 그리고, 게임 그 자체로 하고 싶게 만들지 못하면, 그 게임은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물론 그게 얼마나 어려운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말처럼 쉬웠으면 내가 백만장자겠지)


그럼 왜 명작이라고 평가한 건데?

나는 게임을 3번 켜서 3번 다 30분만에 껐다. 그리고, 꼭 끝까지 깨야지라고 생각하며 켠 4회차에나 겨우 엔딩을 보았다. 이토록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음에도 명작이라고 평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심한 설계? 확실한 재미? 적절한 난이도? 아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갖췄어도, 보통 90점을 주지 않는다. 수작과 명작 사이, 나만의 뚜렷한 기준이 있기에.

 

그건 한 문장으로 적을 수 있다.

 

이 게임에서 무엇을 경험했고,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게임은 경험이다. 게임이 다른 매체와 차별화되는 가장 큰 지점은, 직접적인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만화는, 영화는 그럴 수 없다. 아무리 생생해도, 아무리 몰입해도, 그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지,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 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게임은, 아무리 스토리가 좋고,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대도, 내가 움직여서 만든 이야기다. 게임은 다른 매체와 달리, 누군가의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생생한 경험이다.

 

그리고 경험은 변화를 낳는다. 가정에 소홀하던 사람이 특정 사건으로 가족들을 아끼게 된다던지, 지루함을 참고 성과를 낸 경험으로 인내심이 향상됐다던지. 경험은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도 사람을 바꿔놓는다. 누군가와의 다툼과 이별로 슬픔에 빠져 살기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숨게 되기도 한다. 혹자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걸 "그 사람은 두 번 변한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경험과 변화를 중요시한다.

 

대부분의 게임은 그저 재밌었다로 그친다. 혹은, 그 재미마저 없기도 한다. 어떤 게임은 지나치게 교훈적이어서, 반발심만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게임이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지, 그로 인해 그 사람이 어떤 변화를 맞을 수 있는지는 수작과 명작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이런 기준에서, 할로우 나이트는 확실한 포인트가 있다.

 

막힌 길에 너무 집중하지 마라. 때로는 다른 곳에서 해낸 성장이, 그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벽을 마주한다. 그 벽을 넘기 위해 몰두하지만, 끝내 넘지 못하고 주저앉기도 한다. 고통스러워서, 어려워서, 답답해서, 방법을 몰라서, 우린 결국 포기하고 돌아선다.

 

하지만 이 게임은, 할 수 없는 일에 너무 집중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단지, 지금 막혀있을 뿐, 미래에도 막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될 때까지 해도 안 되는 일엔 마커를 찍어두고, 다른 일을 하며 성장해서 돌아오자. 

 

어쩌면 그 성장은 벽을 넘기 위한 노력에서 올 수도, 때론 전혀 생뚱맞은 곳에서 오기도 한다. 게임 기획을 하다 막혔을 때, 비슷한 장르의 게임들을 분석하며 타파하기도 하지만,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에서, 소설에서, 때론 친구와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어 풀리기도 한다.

 

그러니 안 되는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대신, 마음 속에 새겨놓고 성장해서 돌아오자. 조금 늦으면 뭐 어떤가. 결국 나라는 삶의 엔딩을 보기 전에만 깨면 되는 게 아니던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연습하자. 될 것 같다면, 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더블 점프가 없을 때도, 몬스터를 유인한 뒤 밟고 올라갔던 첫 애벌레처럼, 무한히 죽어가며 결국엔 클리어한 어려웠던 보스처럼. 하지만 지금, 도저히 손쓸 방법이 없다면, 잠깐 다른 것을 하러 가자. 그리고 다시 돌아오자. 그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정도 여유는 있다.

 

적어도, 이 게임의 엔딩을 본 사람이라면,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할로우 나이트는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했고, 그 경험으로 사람을 바꿀 수도 있으니. 그것이 내가 할로우 나이트를 명작으로 평가한 이유다.


마무리

이러니저러니해도, 할로우 나이트는 명작이라 생각한다. 게임 개발을 업으로 삼은 나도, "그래서 이정도 게임은 만들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아뇨"라고 당당히 외칠 정도로 명작이다. 단지 한 명의 유저로서, 또 분석한 기획자로서 아쉬웠던 점이 있었을 뿐이다.

 

게임 후기 자체는 오래 전부터 올리고 싶었고, 또 많이 밀렸는데, 이미 다 깬 게임 스샷 찍으려고 켜는 게 무서워서 계속 미루고 있다가, 할로우 나이트 클리어 기념 이제야 하나 올려본다. 앞으론 인생작들 위주로, 차근차근 하나씩 올려봐야지.

 

엔딩을 "보기만" 했다.

 

여담으로, 나는 아직 할로우 나이트를 다 깨진 않았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후기를 작성했지만, 아마 다시 100% 클리어를 향해 달려가지 싶다. 다만 현재 만들고 있는 게임도 2개나 있는 만큼, 켠왕하던 지금까지보단 조금 느긋하게 깨보려고 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혹여나 다른 감상, 의견이 있다면 댓글로 달아준다면 기쁠 것 같다. 게임 분석 얘기를 하고 싶어도 할 곳이 많지 않아서.

 

+) 그리고 진짜... 하... 왜 하필 벌레였을까. 나름 징그러운 거에 내성이 있는 편인데도 깊은 둥지는 진짜 하다가 꺼버리고 싶었다. 아무리봐도 득은 없고 실뿐인 몬스터 디자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 2025.10.05. 진엔딩까지 완료

 

완성도는 다 못 채웠지만 진엔딩까진 완료. 탐험 게임 특성상, 후반부로 갈수록 어디서 무엇을 놓쳤는지 찾기가 힘들어 스트레스는 커지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수집 요소들을 모으다보면 끝까지 깨지긴 한다.

 

중간에 고통의 길에서 4시간 정도 쓴 거 같은데, 맵은 전부 깼으나 막판 몹에게 죽어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하....

 

스토리는 딱히 평가할 게 없음.